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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혼잣말

유일한 사람

어릴 적 동네에서 나를 소개할 땐 항상 "유일설비 집 딸이에요!."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설비업을 하셨는데, 상호명이 「유일설비」 였다.
그 동네에서만 약 15 여년을 살았던지라

유일설비라고 하면 동네 어르신들이 척 알아들으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일이란 말이 좋기도 했나보다.

 

한 번은 엄마께 

"왜 '유일설비'라고 정했어?"라고 여쭤본 적이 있다.

 

"그게, 엄마랑 아빠랑 상호를 뭘로 할까 고민하고 있던 시기에
어느 날 TV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차가 강에 빠지는 바람에 전부 다 죽고 유일하게 한 사람이 살았더라고.
근데! 그 생존자 이름이 마침 'O유일' 이지 뭐야.

그래서 둘이서 번뜩 저거다! 했지."

 

별 기대 없이 물어 본 건데 뜻밖의 이유를 듣고는
그런 깊은 뜻이! 라며 어린 마음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 이상 유일설비라는 말을 할 일이 없어지고

일상 생활 에서도 은근 사용되지 않는 단어라

마치 없던 단어처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저번 주 NCS 수업이 있던 날.  간만에 듣게 되었다.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란 국가직무능력표준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 기술, 소양등의 내용을 국가적 차원에서 표준화한 것이다.
요즘 국비지원을 통해 무료로 대우직업전문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학교에서는 NCS를 기반으로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기때문에
일주일에 한 시간씩 NCS 강의를 듣고있다.

 

이날 수업주제는 자기개발능력.

특히 개인브랜드화에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귀에 쏙 들어왔다.

브랜드화를 통해 '유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평소에 "꼭 '나'여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던지라 매우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나 자기소개서를 써야하는 상황이 오면 수십수백수만번 고민하게 되는 부분...

좁게는 가족들 사이에서, 연인 사이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나아가 사회 속에서
굳이 '나'여야만하고 '나'일수밖에 없는 것.
이것은 나의 자존감을 지탱하고 자아를 흔들리지 않게 해준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냐 아니냐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 매우 중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나를 브랜드화 한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나처럼 특출나게 드러나는 것 없이 이것저것 모두 평타치는 사람에겐 더더욱.

 

나에게 있어 긍정적이고 발전적이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호감을 선사하는 절대적인
유일한 무언가가 대체 무어냐?

애초에 그것을 찾아야
갈고 닦아 반짝반짝 빛을 내어 "이게 나요~" 할텐데
그것을 찾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고 새롭게 억지로 나를 거짓으로 꾸며내는 것도 못하겠다.

 

오래전부터 이에 관해 많은 생각들을 끊임없이 했지만 아직도 명쾌한 답은 못내렸다.
다만 막연하게 실마리를 찾았다 한다면...
적어도 나는... 나의 어두운 부분을 먼저 찾아야 했다. 
외면당하고 그릇되고 부정적인 부분들.
그것들을 수용하게 되니, 무엇이 나의 강점이고 장점인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라는 책이 있다.
책 제목을 마주하자마자 내 마음은 크게 동요했다.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인정하란 이야기일까?

무슨 내용인지 당장 서점을 달려가 읽어보고 싶었는데

혹시라도 제목과 달리 내용에 실망할까봐 여태 읽어보진 못했다. 비겁한 변명이 아님.
맞는 것은 맞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고집스런 성격이지만 모순적이게도
때로는 내가 착각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지극히 내게 만큼은 그저 진실이길 바랄 때가 있다. 옳지 않더라도.
물론 희망사항일 뿐이고 결국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그 확인은 무척이나 나중나중으로 연기하고 싶은 정도.

 

아무튼 나를 브랜드화 하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한다는 얘기.

나는 이미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꺼내어 잘 닦아 좋은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빛이 나겠지.
한낱 돌맹이가 가치있는 보석이 되기까지 연마의 과정을 거치듯이.

 

그게 나의 브랜드화이며 진정 유일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괜히 옛 생각도 나고
마침 내가 한참 고뇌에 빠져있는 이야기이기에 서두 없이 주절주절.

 

PS. 그러고보니 NCS에서 '자기개발' 이라고 했지만 이건 '자기계발' 이지 않나?.....

계속 의문을 품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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