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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혼잣말

자부심이 부끄러움으로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명절증후군이 오는 듯 하여 두렵고 스트레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 맘때를 기다리게 된다.

곧 있을 남강유등축제 때문에.

 

내가 초등학교 1-2학년일 때 (입학은 국민학교지만...)

10월 3일 하늘이 열리는 날, 개천절을 맞이하여 개천예술제를 크게 했다.

퍼레이드도 하고 여러 경연 대회와 공연들도 볼거리도 많았다.

그 중의 하나로 작게 유등 축제가 있었을 뿐.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유등축제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창작등을 만드는 시간이 주어졌고

완성된 등은 진주성 걸어 길을 장식했다.

남강줄기를 따라 방 크기 만한 유등이 더욱 다양하게 띄워졌고, 강변에는 화려한 야시장이 열렸다.

 

처음부터 외부인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진주 시민을 위한 축제고 행사였다.

내가 아담한 편이라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갖가지 공연과 행사들도 열렸다.

 

진주성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작은 도시의 하늘을 가득 채우는 불꽃놀이를 보노라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매해 보아도 질리지가 않고 항상 이 맘때가 되면 괜히 두근두근.

그래서 지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초대하는데에 망설이지 않았다.

심지어 교직과목 3분 스피치로 남강유등축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ㅋㅋㅋ

올해 초만 해도 마찬가지.

 

그런데 최근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남강유등축제가 유료화 된다는 것. 1인당 1만원으로.

꽤 유명한 축제가 되었다지만 갑자기 유료화가 되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디서 어디 구간을 유료화 한다는 건지 이해도 안되고 예상도 못하겠다.

특별히 입장하지 않아도 그냥 버스타고 지나가기만 해도 훤히 보이는 강가에 띄워진 유등을.

 

그치만 뭐 다른 여행지나 관광지를 가도 이 정도 받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개인으로선 알 수 없는 여러 재정 및 관리차원의 문제가 있나보다 했다.

알아서 하겠지. 

주변사람들에게 1만원씩 부담하면서까지 보러오라고 추천하기는 애매해졌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더 어이없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의 마음일 뿐.

이젠 오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진주 시민에게 초대권이 우편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월~목요일까지만 사용 가능 한 초대권이.ㅋㅋㅋㅋㅋㅋㅋ

What?

아무리 인원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주말에 보려면 돈 내고 보고 한적한 평일에나 와서 공짜로 보든지. 라는 건가.

진주시민으로서 너무 섭섭한 대우아닌가?

오래전부터 진주 시민들이 함께 즐기고 참여하여 어울려 온 축제였다.

게다가 이번은 유료화 첫 시도이지 않은가?

 

정말 너무들 하는 군.

그래도 돈 문제니까 어쩔 수 없지 하는데

 

2단 콤보 소식이 들렸다.

유료화 구역과 강변에 펜스를 쳤단다.

유료화를 했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펜스라니. 벽이라니!!!

기가 막혔다.

너무 부끄럽다.

외부인들이 축제를 보러와서 이 펜스로 가려진 경관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민망했다.

 

물론, 유료화를 하는 만큼 다양한 콘텐츠와 볼거리를 제공할거라고 하지만

그것이 정말 축제를 글로벌화 하는 것일까?

지극히 지역적인 것이, 진정 글로벌화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바.

 

가족, 친구, 연인과 사부작사부작 걸어나와 해 질 녘 강변을 걷노라면

유유히 유등이 떠 있는 남강을 기준으로

북적북적 사람 재미가 느껴지는 야시장과

맞은편 대조적으로 고요하고 우아한 진주성이 함께 자아내는 경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홀린 듯 카메라 렌즈에 담아보려 애쓰던 사람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의 기억 속 남강유등축제는 그러한 것인데

글로벌 축제가 되겠느니 어쩌느니 하며

유료화 한다고 여기저기 펜스를 치고 시야를 제한해서

진주라는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느낄 기회를 망치지 않았는가?

 

약 이십여년 넘게 개천예술제와 남강유등축제에 자부심을 느껴왔는데

이제는 너무도 부끄러운 축제가 되어버렸다.

이번 축제에 지인을 여럿 초대했었는데 곤란해졌다.

나 조차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마음 반반이니.

과도기이니까. 처음이니까. 하고 이해하면서도

어이없고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후.

내심 나의 편견대로 실패하지 않고

되려 대박 성공하길 기원한다.

그래도 아직 나는 진주를 사랑하니까.

부디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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