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 고생이란 말을 입에 달고 지낸 지 10여년 째.
4년 동안 지낸 대학 기숙사를 제외한 자취생활 경력 동안
남들은 한 번하기도 귀찮아하는 이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역마살이 끼었다,고 주위에서 말들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되려 역마살이 없어 이사를 자주 하는 것인데!
고향이라 할 만큼 오래 머물렀던 진주에서 의식이 있는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조용하고 소박한 진주가 참 아름답고 좋았다.
심지어 이사도 딱 한번 했다. 전셋집인데도 그렇게나 오래 머물렀다니.
그렇게 정 붙이고 한 곳에서 오래오래 잘 지내다가
덜컥 타지로 나와보니 출가가 아니라 잠시 외출한 것 뿐인 듯.
1년, 3년, 5년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 집엔 내 방, 내 책상, 내 자리가 없어지고 점점 다른 것들로 채워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고향 집에서 붙인 정을 쉽사리 떼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집 계약이 끝날 때마다 조금이라도 고향집 같은 안락한 거처를 찾아다녔다.
집 구하고 이사하는데에는 이골이 났다.
그러다보니 일찍이 이사하는데에 나름의 기준과 노하우도 생겼다.
그 중 하나가 주인세대가 있는 건물로 가는 것이다.
남들은 주인세대랑 살면 귀찮다는데 난 차라리 이것저것 간섭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게
여러모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다.
그리고 건물에서 더욱 사람 사는 향기가 난다.
원룸, 1.5룸, 투룸.. 등 왠만한 빌라형건물은
대부분 학생들이거나 직장인들이 지내다보니 싸늘하고 휑하고 삭막하다.
그래서 작년에 이곳으로 이사 올 때에도 주인세대가 바로 앞에 사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번 주인어르신들은 식물 가꾸는 것을 좋아하시는 듯 하다.
주차장 한 켠에 가득한 분꽃과 여러 꽃나무들.
옥상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와 방울 토마토.
건물 층마다 이름모를 국화.
가끔 옥상에 올라갔을 때 시들시들해보이면 대신 물도 좀 뿌려주곤 했는데.
오늘 쌀쌀해진 날씨에 가디건 하나 걸치고 산책을 나서며 현관문을 열자
왠 향기가 무지무지 진동을 했다. 달고 진한 향기.
누가 꿀단지라도 엎었나. 했더니
우리 층에 하~얗게 만개한 꽃나무가 있었다.
아 꽃향기 였구나.
주인어르신들이 이 곳에 이 향기 가득한 꽃을 가져다 놓은 마음은 무얼까.
딱히 답이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고민하며 한참 꽃을 바라 보았다.
알게 뭐람.
이 사소한 꽃 향기 하나로 나의 하루가 충분해진 듯한 느낌인데.
글을 쓰는 지금도 창문을 넘어 은은한 향기가 난다.
기분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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