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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혼잣말

걸을 수 있어서 좋네

출근하는 길,

여유로이 걸어가도 되는데 굳이 이어폰 음악에 맞춰 타닥, 타닥, 가볍게 뛰었다. 뛰는 것이 즐겁다. 물론 오래 뛸 수는 없지만...

 

2007년 사소한 사건으로 내 인생은 크게 바뀌어 버렸다.

대학 동기가 장난으로 의자를 뺐는데 꼬리뼈가 부러졌다.

남들은 깔깔 뛰어놀 때에

횡단보도 조차 제 시간에 건너지 못해 주저앉아 울고 싶었던 나날들

몇 걸음만 내딛어도 머릿속에서 찡 하고 신경이 눌려 온 몸이 멈추었다.

위험한 순간에도 그렇게 꼼짝 못한 채 멈춰있을 수 밖에 없었던....

 

나를 다치게 한 친구의 부모님은 어떤 날엔 소리를 지르며, 어떤 날에는 울먹이며 합의를 요구했고...

엄마조차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괴로워하며 내게 합의를 받고 끝내라 하셨다.

디스크 수술 2번 받을 정도의 돈으로 그 친구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졌고,

봄이 오던 어느 날 사진 찍으러 꽃구경 간다고 내 앞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뛰었다. 내 앞에서.

 

누구도 공감해줄 수 없는 통증으로 인한 스트레스.

끝나지 않던 치료와 시술들을 받으며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면역력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그만 좀 아프고 싶다며 방 한가운데서 무릎 꿇고 처절하게 울며 기도하던 내가 있다.

온통 원망뿐이었다. 오직 내 처지에만 매달려서 좌절과 증오심만을 보았다.

운동을 좋아하고 활발했던 내가..

고작 동기의 사소한 장난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해 서 있지도 못해 움직이지도 못해... 사지 멀쩡한대도 반병신 같은 내 청춘이

얼마나 분했는지.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꼬리뼈는 수술할 수도 없고 아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것마저도 아주 천천히 자리를 잡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 함께

더 이상 아픈 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냥 일상을 즐기며 살라고 했다. 병원도 찾지 말라고.

 

병원을 몇 군데나 돌아다녀도 이런 얘긴 처음 들었다.

왠지 엄청 신뢰가 갔다. 병원이 지긋지긋해진 것도 있고.

그 말만 믿고,  하루하루를 보낸 지 벌써 10여년.

큰 불편함 없이 걸어다니게 되기까지 4-5년이 걸렸고,

병원에서도 난감해하던 릴레이병치레는 마침내 몸무게 20kg 가까이 찌우고서야 끝이났다.

 

물론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았다.

후유증으로 만성통증이 되어버린 오른 다리 신경과

쉽게 사라지지 않는 허리통증은 여전히 나의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

한 20여분 걷다보면 꼬리뼈 통증이 엄습해오기 시작하고..

그 동안의 통증으로 혹사당한 나는 겁을 잔뜩 먹은 채 이를 악물고 걷는다.

때때로 꼬리뼈 쪽이 잘못 맞물려 비명을 꽥 지르며 꼬꾸라질때면

남편은 이제 제법 익숙한 듯 나를 조심히 뉘어 다독여준다.

일상이고 의연해진 일들.

하루하루 괴롭고 힘들기도 하다.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허약해? 혹은 몸 관리가 왜 그 모양이야. 하는 비난 아닌 비난에 변명할 힘도 없다.

시간이 흐를 수록 나는 더 안 아픈 척을 해야한다. 민폐니까.

 

하지만 지난 날

"이 시간들을 극복할 수 있다면 뭐라도 다 갖다바치겠다." 했는데...

지금 무엇을 불평할 수 있겠는가.

 

그래, 가끔은 잘 모르겠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닌거야, 괜찮아, 더 힘든 날도 있는 걸." 하며

마음의 통증을 외면하고 무뎌지게 만드는 것이 과연 좋은건지 나쁜건지.

다만 분명한 것은

살면서 수없이 부딪히고 넘어질 때 마다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순간 내가 불행할 것인지 행복할 것인지 달라진다는 것

 

그 때...... 비록 좀 아프고 힘들었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더욱 행복하고 즐겁게 청춘을 보냈으면 어땠을까..?

물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럴 수 있으리란 확신은 없다.ㅎㅎ

하지만, 나의 아름다웠던 20대 기억 중 대부분이 온통 병원에서 축 쳐져있던 모습 뿐이라는게 아쉽기만 하다.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

불공평한 세상을 합리화 하기 위해 건네는 자기위안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말이지만

지금와서 돌아보면, 진정 행복은 그 어디서도 아닌 내 마음에서 오는 게 맞는 모양이다.

세상 사는게 갈수록 팍팍하고 서글퍼지는 이 때에도 이 두 발로 뛰며 출근하는 길이 마냥 행복하다.

 

 

 

문득, 뜀박질을 하고 있는 나의 두 발을 바라보며.

사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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