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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혼잣말

어른이 되는건지

나의 삶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원래부터 일찍이 출가하여 타지에서 생활했던지라 위화감도 없고...

남친이 남편 되고, 이름 여보로 바뀌고

시댁이라는 식구가 더 생긴 정도.

그리고 어깨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는 정도?

 

그런데 결혼 후 유독 내가 집착(?)이랄까 의식하게 된 것이 있으니

바로 보험이다.

 

사실 나는..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보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대학시절 사고 때문에 보험 가입에 퇴짜맞기 일쑤라 실비보험이 한창 떠들석 할때도 그냥 관심을 끄고 살았다.

친정엄마가 예전부터 내 앞으로 건강보험을 소액 들어놓으신게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엄마가 납부하시고 수익자도 엄마 앞이고... 남 일처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어릴때부터 종합병원 타이틀을 달고 살았고

살 찌기 전에는 대학병원을 내집 드나들듯이 했는데

왜 어째서 보험이 필요하단 생각을 한 번도 안했는지 모르지만 여튼 그랬다.

 

그러다 결혼 준비 할 적에, 리스트를 죽 적다가 앗 보험을 들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삼포시대에 결혼한 우리 부부의 사정 역시 당연히 좋을리 없으니

이런 상황에서 굳이 보험비를 충당해야하는 것을 남편은 이해할 수 없어했지만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려 나와 남편 모두 보험을 들었다.

보험은 보험일 뿐이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씀을 듣고

사정에 맞추어 최소의 보장으로 저렴하게 설계했는데

막상 또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너무 적은 보장이 아니었나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보험얘기를 종종 꺼냈고, 남편은 이사람 대체 왜이러나~ 하고 말았는데

몇일 전. 평소같았으면 "괜찮습니다."하고 끊어버렸을 보험TM 전화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ㅎㅎㅎ

다이렉트보험 싫어하는데... 진짜 그날은 어쩐일인지 네,네 하면서 듣고 또 듣고.

사리분별 못하고 말빨에 홀려 가입하게될까봐 중요한 내용만 듣고 끊으면서 반나절 뒤에 다시 전화를 달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조사도 해보고, 합리적인지 따져보려고 시간을 가진 것인데

결국은 가입했다. 물론 한 시간 넘게 궁금한 것, 의혹가는 것 등 이것저것 주구장창 물어보았다...

 

요즘 생활비로 받는 암보험이 유행인가보다.

뭐 조건을 대충 보면 특정암 제외한 암 진단시 월100만원씩 60회 확정되어 지급되고, 도중에 죽더라도 가족에게 계속 지급되고

또 암사망시 별도로 월100만원씩 60회 확정지급.. 암 진단금 일반암2천, 고액암4천.. 유방암, 자궁암 1200만원 등등..인데

문제는 갱신형이라서 47세때 갱신해야 한다. 이걸 참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갱신형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건 아니라는게 내 생각.

 

가장 좋은 것은 비갱신형 보험을 메인으로 하고, 갱신형 보험은 서브로 갖고 가는건데-

일단 요즘에 비갱신형 보험을 좋은 조건에 가입하기도 어렵고 초반 부담이 크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꾸준히 지속할 수 없을바에야 차라리 15년, 20년만 보장받기 위해서 저렴한 보험을 하나 드는 것도 뭐.

다음 갱신때 보험금이 지나치게 인상되면 쌈박하게 철회하면 될 일이다. 그동안 마음 편하게 보장 잘 받았으니까.

 

그리고 사실 47세까지라는게 좋다나쁘다 할 수가 없다.

물론 통계적으로 가장 위험할 때가 있는 것이고 보험사에서도 그걸 다 조사해서 보험료 산정하는 거지만

어찌되었든 내 삶에서 나라는 인간 하나를 두고 보면 모든 순간이 100% 확률일 뿐이다.

이십대에 암 선고를 받은 지인도 봤고, 삼십대에 접어들면서 여기저기 건강에 안 좋은 신호가 오는 친구도 봤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할머니처럼 팔순이 넘도록 아무 이상 없으실 수도 있는 거니까.

 

 

이렇게 가입하고 나서 Sophie한테도 이 보험 괜찮은 것 같다며 부랴부랴 전화를 해서 설명을 하는데

동생이 피식 웃었다.

 

"언니, 그 보험이 어떤 조건이든 간에 언니가 스스로 납득하고 필요하다 생각했다면 보험가입한건 참 잘한건데

나는 보험에 대해 아직까지 별 생각이 없어. 아직이야."

 

엇.. 저 말은 불과 작년에 내가 하던 말인데...

전화를 끊고, 요 며칠 내내 곰곰히 생각했다.

난 왜 이렇게 보험에 집착하게 된걸까.

.

.

.

글쎄. 차마 글로도 내뱉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은 너무도 막막하고 두려운 것 같다.

결혼이란 것을 해서, 새로운 가정의 공동체를 생성하고 보니

아직은 내가 제대로 준비되어있지 않은 것 같고

이 울타리를 지켜야 할 책임은 자꾸 무거워지기만 하고

혹여 우리 부부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무너지면 그 빈 자리를 채울 자신이 없고...

어떤 시련에도 대비할 수 없을까봐 밑도 끝도없이 걱정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와 사별하고 덩그러니 남은 엄마와 동생들을 봤을 때 그 막막함.

아버지가 아플 때부터, 떠나시고, 떠나신 그 후 까지 엄마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한 여자로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결혼하고 나서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보험보험하고 찾게 되었나보다.

 

내 마음을 이렇게 솔직하게 훑어보고 나니 기분이 착잡하고 서글퍼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난 겉만 어른이 되어있는건가.

어릴 때 어른같지 않은 어른들을 보면서 비웃었던 내가 결국 그 어른이 되어있는건가.

아니면 이게 정말 어른인가.

나이가 하나둘 많아질수록 용기는 셋넷 없어지고 마음은 다섯여섯 나약해지는 것?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넘어져도 반드시 꿋꿋하게 일어날 수 있는.. 오뚜기같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것.

 

그저께 보험증서와 청약서류가 왔길래 한 시간을 꼼꼼히 앉아서 정독했다.

그리고 내가 이 보험을 왜 가입하는지 목적을 확고히하여 자잘하게 붙어있는 특약들을 해지요청하여

오늘 담당 FC로부터 변경 된 청약서류와 소정의 가입사은품을 택배로 전달받았다.  

그래, 딱 만오천원으로 47세까지 나약한 마음 위로하자. 

보험 하나 들면서 이런저런 말이 많아지는 나란 여자. 후~

드르렁 드르렁 피곤에 지쳐 잠든 남편을 보며 이런 저런 혼잣말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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